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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수 칼럼]사는 것은 시작입니다

기자명 : 문형봉 입력시간 : 2022-09-29 (목)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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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조은신문
발행인 나  영  수

중국 산둥성과 산시성을 가르는 태항산은 높이가 만 리 길이고 돌아가도 700리 길이다. 
  태항산 북쪽에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란 뜻을 가진 우공이라는 아흔살 노인은 태항산과 왕옥산 두 산을 옮기기로 결심하고 아들, 손자, 이웃집 청상과부, 일곱 살 난 아들까지 흙을 퍼서 발해 바다로 져 날랐다. 한번 다녀오면 일 년이 걸렸다. 
 
 우공의 친구 ‘지혜로운 늙은이’란 뜻을 가진 지수가 찾아와 충고했다. 그러나 우공은 오히려 ‘생각이 돌과 같네, 내가 죽으면 아들이 있고, 손자도 있고, 이웃집 소년도 있네. 산은 한치도 높아지지 못하네. 우리가 시작한 이상 언젠가는 옮겨지지 않겠나?’ 우공에 감동한 상제는 우공의 바람대로 두 산을 옮겨 주었다. 
'열자'에 나오는 고사다.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우보만리’도 같은 말이다. 손자에 보면 노마십가도 있다. ‘준마가 하루에 천리를 가도 간 것이고 둔한 말이 열흘에 천리를 가도 간 것이다’라는 뜻이다. 조금은 더 힘이 들고 시간이 걸려도 결국은 도달한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준마라 할지라도 출발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없다. 첫 숫가락에 배부를 수는 없다. 우공의 결심처럼 노마의 끈기처럼 시작하게 되면 결과는 반드시 온다. 
 탄생은 울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울음이랴. 모든 시작은 두렵고 힘이 든다. 그래서 여행은 늘 설레고 가슴이 뛴다. 하루는 내 삶의 새로운 도전이다. 눈을 뜨면 과거의 삶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출발이 된다. 어제 밤의 꿈조차도 지나가버린 과거다. 오늘 나는 시작이라는 울음을 내고 산을 옮기기 위해 삽을 든다.
 
 시간은 현재가 없다. 현재를 인식하는 순간 과거가 되고 현재를 기다리는 동안 미래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과거와 미래가 없으시다. 지나간 일도 앞으로의 시간도 순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에덴은 과거며 부활은 미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덴도 현재이며 새 하늘과 땅도 현재다. 산자의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두를 함께 보고 계신다.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가능한 것은 시간의 초월자이시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일방적이지 않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부르심을 따랐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믿음은 산을 들어 바다에 던져지게 되는 것이다. 

  신념이 믿음이 되는 것처럼 완고한 고집은 없다. 내 믿음이 철저하고 확고하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반드시 그렇게 되었을 때 사실이 되는 것이다. 바리새인도 믿음을 가졌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문을 닫는 자들이 되었고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그들보다 더 지옥의 자식이 되었고 소경된 인도자가 되었다. 
 어떤 것이든지 결과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답이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사는 것은 시작이다. 

문형봉 기자 mhb04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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