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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낙산구간서 놓치지 말아야 할 탐방포인트

기자명 : 장예원 입력시간 : 2018-08-28 (화)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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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특히 역사 유적지 탐방을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서울에서 역사적 배경지식을 특별히 요구되는 곳 중 하나가 ‘한양도성 낙산구간’이다. 과거 몇 차례 탐방 경험이 있는 기자는 시민들이 꼭 보았으면 하는 낙산구간 탐방 포인트를 소개하려 한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성곽을 말한다.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낙타(낙산)·목멱(남산)·인왕 등 내사산(內四山)의 능선을 따라 축조한 성곽이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른다.
이 중 낙산(124m)은 조선왕궁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으로 그 모양이 낙타 등을 닮아 ‘낙타산 또는 타락산’이라고 불렸다. 조선시대 도성 안의 5대 명승지 중 하나였던 낙산공원 일대는 문인들이 별장을 짓고 살 만큼 풍광이 아름다웠던 곳이다.
지난 주말, 한양도성 순성길 첫 번째로 ‘낙산구간’을 탐방했다. 낙산구간은 흥인지문에서부터 혜화문까지 길이 2.1km의 구간이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동대문역 7번 출구를 나오니 ‘흥인지문’이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혜화문까지 성곽의 안과 밖을 오가면서 긴 세월 속에 묻혀있는 8가지 역사 이야기를 꺼내본다.

① 흥인지문(興仁之門)
현재의 흥인지문은 고종 6년(1869)에 다시 지은 것이다. 조선 후기 건축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어 보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서울의 지세는 ‘서고동저(西高東低,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음)’이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는 동대문이 가장 취약하였다. 이에 방어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동대문 바깥쪽으로 ‘옹성(甕城, 항아리모양의 겹성)’을 하나 더 쌓은 독특한 형태이다. 1907년 좌우 성벽이 헐려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② 한양도성박물관
흥인지문을 뒤로 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면 동대문성곽공원이다. 언덕 위 저 멀리 우뚝 솟은 건물이 보인다. 이화여자대학교 부속 동대문병원을 철거하고 세운 서울디자인지원센터 건물이다. 이곳 1~3층에 한양도성박물관이 있다. 시민들에게 한양도성의 역사와 가치를 알려주며 다양한 순성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하절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방한다(월요일 휴관).

③ 공사실명제와 각자성석
도성 축성과 관련한 글을 새겨 넣은 돌을 ‘각자성석(刻字城石)’이라 한다. 낙산구간이 끝나는 동대문성곽공원 도성 바깥에 가장 많다. 성곽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각자성석들을 이곳에 모아놓았기 때문이다. 태조·세종 때의 각자성석에는 구간명과 구간별 축성 담당 군현(郡縣)명이, 조선 중기 이후의 각자성석에는 감독관과 책임기술자의 이름, 날짜 등이 명기되어 있다. 최근 회자되는 ‘공사실명제’가 조선시대에 실시되었다니 놀랍다.

④ 창신동 봉제마을(채석장 터)
각자성석을 뒤로하고 낙산 성벽 바깥쪽 오르막 마음은 창신동이다. 조선시대에는 퇴직한 궁녀들이 주로 모여 살았던 곳이다. 1960년대 이후에는 동대문 시장에 의류를 납품하는 하청업체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한국 봉제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마을 한가운데 깎아지른 듯한 돌산절벽이 남아있다. 대한제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돌을 캐냈던 높이 40m, 길이 201m의 채석장이다. 덕수궁 석조전을 비롯하여 근대 서울에 지어진 석조건물의 상당수가 창신동의 돌을 사용하였다. 지금은 채석장 아래에서 절벽 위까지 빼곡히 집들이 들어서 진풍경을 이룬다.

⑤ 낙산공원
이화마을을 지나면 낙산공원과 놀이광장이 나타났다. ‘서울의 몽마르뜨 언덕’이라 불릴 정도로 전망이 좋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과 야경은 황홀경이다. 백악산과 인왕산에서는 서울의 원경을 감상할 수 있다면 이곳 낙산에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서울도심의 조망을 선물한다.

⑥  장수마을
낙산공원에서 암문을 통해 도성 밖으로 나오면 성벽을 끼고 있는 작은 마을은 ‘장수마을’이다. 60세 이상 장수하는 노인 거주 인구가 많아 ‘장수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후에 형성된 판자촌에서 기원한 장수마을은 뉴타운 예정지로 지정되었으나 주민들은 재개발이 아닌 마을재생사업을 선택했다. 이후 직접 집 단장과 골목길을 정비하여 지금처럼 산뜻하고 깔끔한 마을이 되었다. 주민 참여형 마을재생사업 성공사례의 하나가 되었다.

⑦ 가톨릭대학교 뒷길
18.6km의 한양도성 순성길 대부분은 성 안쪽에 조성되어 있어서 주로 어깨 높이 정도의 여장(女墻, 성벽 위에 설치하는 낮은 담장)만 볼 수 있다. 그러나 낙산구간만큼은 성 안팎에서 걸을 수 있도록 순성길이 조성되어 있다. 특히 가톨릭대학교를 따라 이어진 성벽길에 들어서면 한양도성의 웅장함과 견고함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아울러 세종·숙종·순조 연간의 성곽 축성 행태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⑧  혜화문(惠化門)
한양도성의 북동쪽에 있는 문이다. 창건 당시에는 홍화문이었으나 창경궁의 정문 이름을 홍화문으로 지음에 따라 중종 6년(1511) 혜화문으로 개칭하였다. 문루가 없던 것을 영조 때에 지어 올렸다. 문루는 1928년에, 홍예는 1938년에 헐렸는데 1994년 본래 자리보다 북쪽으로 옮겨 새로 지은 것이 지금의 혜화문이다
처서(處暑)를 지나니 본격적으로 가을의 문이 열린 듯하다. 하늘이 높고 바람은 선선하니 걷기가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는 싶지만 막상 떠나려면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이 많아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이럴 때 서울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양도성 순성길’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있다. 500여 년간 조선왕조의 도성(都城) 기능을 수행했던 한양도성, 그 자체가 바로 ‘현장 박물관 (On-Site Museum)’이다.
도심의 바쁜 일상에서 하루의 쉼표를 찍을 곳을 찾는다면 ‘한양도성 낙산구간’을 추천한다. 특히 경사가 완만하고 노을과 야경 등 조망이 빼어나서 가족 연인 친구들과 도란도란 추억 쌓기에 안성맞춤이다. 낙산구간의 관람 포인트에 대한 정보까지 챙긴다면 맛깔스런 탐방은 보증수표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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